금융
구조조정 무풍지대 한국은행, 고무줄 인사정책과 과잉복지로 비판
기사입력| 2015-03-02 10:15:31
중앙은행으로서 통화신용정책과 화폐발행, 지급결제제도 및 외환보유액 운용업무 등을 수행하는 한국은행은 금융권에서 그동안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집단'으로 각인돼 왔다.
좀처럼 외부인사에 문호를 개방하지 않고 공채 출신 위주의 순혈주의를 고집하는데다, 경제여건의 변화에 대처하는 것도 늦다는 지적이다. 또 한국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 있는 조직답게 자존심도 강하고 권위주의적이라는 평가도 듣는다.
그런데 이같은 폐쇄적인 한국은행의 조직 내부를 들여다봤더니 인사와 직원복지 등이 방만한 것으로 최근 감사원 감사결과 드러났다. 시중은행에선 매년 구조조정의 삭풍이 몰아치고 있는 상태. 하지만 한국은행만큼은 그동안 '구조조정의 무풍지대'에서 안주해 온 것이 이번에 다시 한 번 밝혀졌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의 평균연봉은 2013년 기준 9500만원이고 비급여성 복리후생비 700만원을 포함할 경우 직원 1인당 보수총액은 1억200만원에 달하는 소위 '신의 직장'이다.
▶상위직급은 많을수록 좋다?
감사원 감사결과 우선 한국은행은 고위직급이 필요 이상으로 과다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4월 현재 한국은행의 1급(국장급)과 2급자(부국장급) 중에서 주로 보임하는 국·실·부장 직책수는 총 100개로 조사됐다. 또 2급과 3급자(차장급) 중에서 주로 보임하는 팀장수는 172개. 1~3직급 직책수는 총 272개인 셈이다.
하지만 1급과 2급, 3급의 정원은 각각 82명과 157명, 373명 등 총 612명으로 직책대비 상위직급 정원이 과다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한국은행에는 상위직급자를 위한 '위인설관' 자리가 다수 운영되고 있는 상태다. 가령 1급 중에서 선임된 8명의 자문역은 국·실장 등 부서장에게 자문을 해주며 고액연봉을 챙기고 있다. 한국은행 1급 직원의 평균 연봉은 1억7000여만원. 보통 일반기업에선 최고경영자(CEO)를 위해 자문역 등을 두고 있으나 한국은행에선 상위직급 자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부서장에게까지 자문을 해주는 기형적인 인사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8명의 2급 전문부국장도 자문역과 비슷하게 국·실장을 보좌하는 역할을 하며 평균 1억4000여만원의 연봉을 받고 있다.
이처럼 상위직급 과다로 한국은행의 1급부터 5급(대졸 초임직급)까지의 직원 1604명 중 만 50세 이상이 403명으로 25.1%에 달하는 것으로 감사원 감사결과 드러났다. 특별한 역할 없이 지내는 상위직급자가 적지 않다보니 직원의 고령화 현상이 빚어졌다는 분석이다.
승진 인사제도의 운영과정에서도 원칙을 어긴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의 인사관리 규정에 따르면 직급별 승진인원은 정원 대비 부족한 현원 범위 내에서 하도록 돼있다. 그런데 2013년도 정기인사의 경우 2급과 3급 승진 최대 가능인원은 29명과 35명이었으나 각각 2명과 1명을 초과해 각각 31명과 36명을 승진 발령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특별승진의 경우 종합평점 순위가 승진배수 밖에 있는 자로서 부서장이 공적조서를 첨부해 해당 직원의 승진을 추천해야 승진심사후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2012년 12월 24일 개최된 경영인사위원회의 특별승진 후보자 심의에서 종합평점순위가 승진배수 밖에 있는 자로서 부서장의 승진추천도 받지 못한 2급 직원 1명을 1급 특별 승진자로 결정, 2013년 1월 4일 1급으로 승진 발령했다. 승진인사가 '고무줄 잣대'에 의해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2중3중의 과도한 복지혜택
한국은행의 복리후생도 과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은행에선 자체 예산으로 선택적 복지비 명목으로 직원들의 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사내복지기금에서도 의료비를 지원하고 있으며, 단체보험(의료실비 보상)도 들어주고 있다. 이같은 시스템에 따라 2013년의 경우 선택적 복지비로 직원 1인당 360만원을 지급하면서 의료비로 총 16억원, 단체보험료 6억원의 예산이 지출됐다. 결국 한국은행 직원들이 질병으로 병원치료를 받을 경우 2중3중의 치료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감사원의 지적사항도 한국은행에겐 '마이동풍(馬耳東風)'격이었다. 감사원은 지난 2009년과 2010년 한국은행에게 정부방침에 따라 직원들의 연차휴가보상금을 연간 25일 한도내에서 지급하도록 요구했다. 또 근무성적 평가결과에 따라 지급되는 평가상여금의 경우 장기 교육훈련 중인 직원 등에게는 지급하지 않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2012년부터 2013년 사이에 총 1232명의 직원에게 25일 이외의 일수를 가산한 26~42일의 연차휴가를 기준으로 미사용 일수에 대한 연차휴가보상금 8억5900만원을 지급했다. 아울러 국내외 교육기관에 파견돼 교육을 받느라 실제 근무하지 않은 직원 69명에게도 총 6억4500만원의 평가상여금을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근로시간도 변칙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근로시간이 1일 8시간인 경우 1시간 이상의 휴식시간을 별도로 주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하루 근로시간 8시간은 휴식시간을 제외한 시간을 의미한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노동조합과 단체협약을 맺으면서 1일 8시간, 주 40시간으로 근로시간을 약정하고도 실제 근무시간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로 정해놓았다, 근무시간 8시간 중 1시간의 휴식시간을 포함하도록 규정해 사실상 1일 7시간, 주 35시간으로 근로시간을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무상으로 대여하는 55채의 사택을 각 지역본부에 두고 있는데, 이중 3채는 수요가 없어 비워두거나 다른 본부에 근무하는 직원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한 직원은 13년간 같은 사택을 이용하는 등 은행 소유의 사택이 마치 직원 개인용으로 사유화되고 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이번 감사결과에 대해 "이번 지적사항들은 지금 즉시 시정할 수 있는 것과 중-장기 개선이 필요한 것들로 나눠 모두 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송진현 기자 jhso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