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탈헬스케어 기업 한독(옛 한독약품)이 '나라장터(국가종합전자조달 시스템)'에서 담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독이 다른 경쟁업체와 사전에 투찰가격을 협의했다는 정황이 최근 드러났기 때문이다. 또한 한독은 지난해 낙찰 받은 물품을 다른 업체에 넘겨 '무늬만' 제조업체라는 비난도 받고 있다. 사진은 한독 홈페이지에 게재돼 있는 김영진 회장의 윤리경영 강조 문구. 사진출처=한독 홈페이지
소화제 '훼스탈'로 잘 알려진 한독(옛 한독약품)이 조달청이 운영하는 국가종합전자조달 시스템 '나라장터'에서 담합 의혹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 한독이 조달청의 의료기기 물품 구매 입찰공고에 참가하면서 다른 경쟁업체와 사전에 가격을 협의했다는 정황이 드러난 것. 더욱이 한독은 물품 공급건을 낙찰 받은 뒤에는 다른 업체에 이를 넘겨 '무늬만' 제조업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때문에 평소 '윤리경영'을 강조해왔던 김영진 한독 회장에게 업계는 "말 뿐이었다"는 비난의 화살을 쏟아내고 있다.
게다가 '한독 담합 의혹' 사건으로 나라장터의 입찰시스템까지 "허술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파문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1958년 설립된 한독은 훼스탈 외에도, 파스형 관절염치료제 '케토톱'과 건강기능식품 '울금 테라민30', 숙취해소제 '레디큐' 등을 생산하는 중견 제약기업으로 근래 들어 의료기기 등을 생산하며 토탈 헬스케어 기업으로 변신했다.
▶한독, 액체질소통 입찰 담합 의혹…김영진 회장 '윤리경영' 퇴색
한독은 지난 6월 충북지방조달청이 '나라장터'에 공고한 액체질소통 구매건 입찰에 참여했다. 최근 한독은 이 과정에서 가격 담합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독 메디컬사업본부의 한 팀장급 직원이 지난 7월 12일 입찰을 앞두고 연락이 온 액체질소통 수입업체에게 '투찰가 산정방식을 모른다'며 얼마의 금액을 써내야할 지 문의한 후 가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결국 한독은 해당 입찰에서 4억2816만2410원을 써내 낙찰 받았다.
당시 한독이 써낸 금액은 예정 가격에 대한 낙찰 금액의 비율인 '투찰율'이 80.50%였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독의 해당 직원이 '해당 액체질소통 수입업체와 어느 정도 협업(co-work)했으며, 이 회사가 (해당 입찰건에 대해) 투찰금액을 정해줬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전했다. 또한 한독 직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뜻도 내비쳤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실제 지난해 5월 나라장터에서 이뤄진 액체질소통 입찰에서도 한독은 2억5799만원으로 최종 낙찰자로 선정된 바 있다.
이런 의혹 외에도 한독은 이들 입찰과정에서 '무늬만' 제조업체라는 비난도 받고 있다. 해당 액체질소통을 제조·공급할 여력이 없는 한독이 낙찰을 받은 후, 실제 제조·수입업체에 일감을 넘긴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독이 지난해 낙찰 받은 액체질소통 공급건을 다른 수입업체에 낙찰가보다 낮은 금액에 넘긴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만큼의 차액을 한독 측에서 가져간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어 "올해도 낙찰 받은 건에 대해 한독이 여러 업체들과 접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한독측은 해당 사실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독 관계자는 "내부 투명경영센터에 이같은 일이 제보돼 현재 조사중"이라며 말을 아꼈다.
이같은 한독의 담합 의혹을 놓고 '모순된 행태'란 비판도 나오고 있다. 김영진 회장은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윤리경영은 이제 기업 생존 전략의 하나로 뿌리내리게 되었다"면서 "창립 이래 회사는 윤리경영과 정도경영을 일관되게 실천해왔고 특히, 영업부문에서는 남들보다 앞서 공정거래 자율준수규범을 모범적으로 실천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결국 이번 입찰 사건으로 김 회장의 윤리경영 선언은 크게 퇴색할 수밖에 없는 모양새가 됐다.
▶조달청 '나라장터'시스템 허점 논란…브로커 존재 가능성도
한독의 입찰 의혹으로 덩달아 조달청의 나라장터가 입찰 허점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자격 미달 업체들이 '우후죽순' 입찰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브로커가 개입한다는 업계의 불만도 나오고 있다.
이번 한독이 관련된 액체질소통 입찰건을 보면 수십개의 업체들이 입찰에 참여했는데 이들을 살펴보면 교재사, 문구사, 생활용품 제조사 등 액체질소통과 관련성이 떨어지는 업무를 수행한다. 더욱이 일부 업체는 존재 유무조차 모호하기까지 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액체질소통의 경우 보건·의학 분야에서 연구와 실험대상 보존 등에 주로 쓰이는 만큼 제조업체의 전문성 중요하다"면서 "그럼에도 미자격 업체들이 '나라장터에 등록해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입찰에 참가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입찰에 참여하는 업체들 뒤에 브로커의 존재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그는 "자격도 안 되는 업체들이 입찰에 뛰어들어 있고, 일부는 위장업체로 보인다"며 "낙찰된 뒤에는 특정인이 개입해 실제 제조·수입업체와 연결시키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장종호 기자 bellho@sportschosun.com